"암호학은 수학이 현실을 바꾸는 학문입니다. 이론이 산업으로 확장되고, 산업이 다시 새로운 이론을 부르는 순환이죠.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모든 정보가 데이터로 수집되는 만큼, 그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학자로서 보람 있는 도전입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처럼 암호학의 중요성과 매력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동형암호’라는 기술에 주목해왔는데, 이는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로 계산이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동형암호는 1970년대 개념이 제안됐지만, 복잡한 연산 구조로 인해 실용화되지 못했다. 천 교수는 2011년부터 이 기술을 본격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2018년에는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크립토랩’을 설립했다. 이후 끊임없는 연구 끝에 연산 속도 문제를 해결하며, 이 기술은 이제 의료, 금융, 공공 데이터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화되고 있다.
그는 2015년 성탄절을 회상하며 “화이트보드에 문제를 적다가 알고리즘 단순화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암호화된 채로도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2017년 국제대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보다 30배 빠른 성능으로 우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기술은 현재 크립토랩의 솔루션 ‘혜안’에 적용되어 있으며, 당시보다 성능이 100배 향상된 상태다.
크립토랩은 정부의 클라우드 보안 프로젝트는 물론, 국민연금공단, 개인신용평가사, 유전자 분석 기업 마크로젠 등과 협업하며 동형암호 기술을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민감한 정보를 학습에 활용하게 되는 현재와 미래에 있어, 데이터의 보안성과 프라이버시 보호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천 교수는 “데이터가 유출되더라도 이를 해석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보안의 핵심”이라며, 완벽한 방어보다 실질적인 ‘사용불가능성’이 해킹의 의욕을 꺾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크립토랩은 현재 한국을 본사로 두고, 프랑스 리옹과 미국 실리콘밸리에 각각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지사는 이론 강화를, 미국 지사는 AI 스타트업 및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천 교수는 “기술력은 갖췄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여전히 활력이 부족하다”며 “대학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기술 창업을 지원하고, 경영·재무·지식재산권 분야와 연결되는 통합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의 기술을 따라 하려는 시도를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K-보안 기술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크게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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